그런 시절이 있었다. 세상의 모든 시련과 희생이 백인에게만 허락되던 시절이. 영화는 현실이 아니다. 현실의 일부만 비춘다. 하지만 그 일부를 비추는 ‘기준’은, 현실의 그 것이 가지는 논리를 거의 그대로 재현한다. 무엇을 비추고 무엇은 비추지 않을 것인가? 영화는 어떤 선택을 해왔는가? 답은 그냥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걸 떠올리면 된다. 선하게 살던 ‘백인’에게 위기가 닥치고 우리의 주인공은 정의로운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높은 확률로 그 백인은 ‘이성애자 남성’이고 그의 ‘정상적인 가정’, 아내와 자식들, 나아가 이 지구를 지켜야 한다. 유색인종, 여성, 그리고 성소수자의 존재를 지워내고 있는 현실의 ‘기준’은, 너무도 당연하게 영화에서도 관습으로 작용해왔다.그렇다고 영화 제작자들과 배우, 그리고 ..
SF 입문자, 페미니즘 입문자의 입장에서 쓴 리뷰입니다. A.(이미 유명한 작가지만) 만약에 이 소설을 읽을 당신이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라는 작가의 이름을 처음 들어본다면, 작가에 대한 정보는 찾아보지 않고 소설만 먼저 읽기를 권합니다(책날개에 사진이 있으니까 절대 보면 안돼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실제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소설과 편지만 공개한 작가를 추측하던, 60~70년대의 독자들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도 재밌는 경험일 것 같아서입니다. 다만 작가가 흘린 몇가지 경험담(공군 조종사, CIA 정보원 등)으로, 사람들은 작가를 남자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 정도는 말해도 되겠네요. 두 번째 이유는, 익명으로 활동하게 된 배경과 그를 둘러싼 주변의 평가들도 하나의 의미있는 에피..
소설을 읽는 진짜 이유에 대해서 김영하 작가는 '헤매기 위해서'라고 했다죠. 표지만큼 몽롱하고 아찔하게 헤맬 수 있는 소설을 만났습니다. 헤맨다는 건, 뻔하고 지루한 세상으로부터 잠시 떨어진다는 의미일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그 진짜 세상에 대한 직유일지도 모르겠어요. 직유든 반어든, 몰입할만한 이야기여야 헤매도 제대로 헤맬 수 있어요. 김성중의 [국경시장]은 독자를 몰입시키기 위해 서늘하고 환상적인 공기로 이야기를 채웁니다. 8편의 단편 중 반 정도는 환상소설이구요. 파리의 골목을 천천히 걸으며 아그네스는 깨끗한 욕실과 작업실, 그녀를 인정하는 사람들의 미소와 같은 것들이 차례로 떠오른다. 아그네스의 절망은 절망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절망이 예전처럼 싱싱하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에바와 아그네스 -..
저의 2015년 마지막 소설 읽기는 이 작품이 되었어요. 추리물은 항상 실패했는데, 미련을 못 버린 이번 시도 역시 또 한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남았습니다. 600 페이지 짜리 재미 없는 소설을 읽은게 억울하니 리뷰라도 써야겠어요. 나른한 이야기 아직 코난 도일이나 애거서 크리스티를 읽지 않아서일까요. 이 쪽 장르에 대한 저의 호감도는 형편없는 수준입니다. 나름 거장이라는 스티븐 킹의, 에드거 상까지 수상했다는 소설이 이렇게 별로라면 저랑은 정말 안맞는 장르인가봅니다. 하지만 아직 궁금합니다. 이 작품이 정말 추리소설 중에 재미있는 축에 속할까? [미스터 메르세데스]를 읽고 있으면 스릴러나 추리라는 장르가 영상 예술 이전에 가능했다는 게 신기해집니다. 퍼즐의 모양은 단순하고, 그렇다고 과정이 놀라운 것도 ..
작품을 쓸 때 특정한 형식을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저 하나의 이야기를 할 뿐이지요. 그것도 누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를 풀어쓰는 구닥다리 방식으로요. 그러나 저는 '일어난 일'을 조금은 다른 형식으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어떤 우회로를 거쳐, 낯선 느낌을 줄 수 있도록 말이죠. 저는 독자들이 '일어난 일'에 대해서가 아니라, '일어나는 방식'에 놀라움을 느끼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단편소설이 거둘 수 있는 최대한의 성과입니다._작가 인터뷰 중에서 그저 하나의 이야기 많은 글 중에 소설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가, 소설은 '그저 하나의 이야기'를 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힘을 덜어낸 글에서는, 그 속의 주장과 근거를 비판할 일도 없어지고 작가의 개인사와 내 삶을 비교할 필요도 없어집니다. '그저 ..
생활의 발견 - 임어당 1.2 - 1.14 스텔라는 어떻게 농장을 구했을까 1.30 - 1.31 아홉가지 이야기 - J.D. 샐린저 소설집 2.2 - 2.23 칸반과 스크럼 2.15 - 2.26 사월의 미 칠월의 솔 - 김연수 소설집 4.7 - 4.17 사물들 - 조르주 페렉 소설 4.26 - 4.30 순간의 꽃 - 고은 작은 시편 5.7 - 5.10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2013) 5.17 - 5.26 아무래도 싫은 사람 - 마스다 미리 6.1 - 6.1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 데이비드 실즈 6.8 - 6.15맛 - 뮈리엘 바르베리 소설 6.25 - 7.7 행복한 그림자의 춤 - 앨리스 먼로 소설집 6.1 - 7.31 첫사랑 - 이반 투르게네프 소설 8.5 - 8.5 피플웨어 - 톰 디마르코 8.1..
20대는, 10대를 지나는 동안 확장했던(가장 억압받는 시기지만) 자아를 다듬기 시작하는 단계. 내 능력은 생각보다 대단한 게 아니었고, 그렇다고 의욕과 열정이 큰 것도 아닌데, 하필이면 경제상황마저 걱정을 끼칩니다. 다른 건 몰라도 마지막 문제는 실패를 시도할 용기조차 갖지 못하게 합니다. 하지만 내가 힘들어하는 건 따로 있습니다. 어찌 됐든, 서로가 가지고 있는 마음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비추는 게 힘든 것. 그 것이 나를 힘들게 합니다. 누가 '어디'에 갔는지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어디에 '누가' 있는지가 더 재밌지 않나요? 그런 친구를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 적은 말로도 즐겁게 이해하고 많은 마음을 서로에게 쓴다고 생각했던 친구에게서마저도 까마득한 거리감을 느끼게 되는 것, 차라리 싸우거나 투덜..
@취향 성장영화로 불리기도 하더군요. 저는 이런 영화, 소설을 좋아한다고 요즘에 느끼고 있습니다. 알게되는 이야기. 변화를 결심하는 이야기. 처음으로 알게되거나, 혹은 겉으로만 알고있다가 다시 진심으로 느끼게 되는 이야기. 그리고 조금이라도 좋은 방향으로 삶을 이끌게 되는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소중한 친구를 잃는 건 슬픈 일이라는 것을. 내가 세상을 보는 방식이 불행을 만들기도 한다는 것을. 내가 사랑했던 사람, 그리고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바꿀 수 있는 것이 많지는 않지만, 생각만큼 없지만은 또 않다는 것을. _알게되는 이야기입니다. #취향2. 순환 엄마는, 아이에게 구정물이 조금이라도 튈까- 바르지 못한 행실로 주변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까- 걷잡을 수 없는 염려때문에 항상 구속하고 제재..
('아이'라는 표현에 기분나빠할 6학년이 있겠지만) 아이들의 웃음에 같이 환해지고, 아이들의 눈물에 같이 무너지는 마음으로만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 여린 마음과 시선을 아이들 뿐만이 아닌 어른들과도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예 어른이라는 말이 없어졌으면 좋겟습니다. 쉽고 빠른 답안을 의심없이 취하지 않았던, 그 대신 항상 질문과 싫증을 가졌던 아이에만 머물렀으면 좋겠습니다. (네가 믿는 걸 믿어) 독종에 별종에 구부러질 바엔 부러지는 타입의 지독한 인물이 하는 이야기지만, 그러나 한 편으로는 그래봤자 아이들에게 해주는 일반적이고 바른 이야기지만, 아이라고 불리지 않은지 한참인데도, 진심으로 단 한번 새기지 못한 이야기입니다. 겪지 못했던 이야기라고 해서, 앞으로 만들어내지도 못하는 건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