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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시절이 있었다. 세상의 모든 시련과 희생이 백인에게만 허락되던 시절이. 영화는 현실이 아니다. 현실의 일부만 비춘다. 하지만 그 일부를 비추는 ‘기준’은, 현실의 그 것이 가지는 논리를 거의 그대로 재현한다. 무엇을 비추고 무엇은 비추지 않을 것인가? 영화는 어떤 선택을 해왔는가? 답은 그냥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걸 떠올리면 된다. 선하게 살던 ‘백인’에게 위기가 닥치고 우리의 주인공은 정의로운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높은 확률로 그 백인은 ‘이성애자 남성’이고 그의 ‘정상적인 가정’, 아내와 자식들, 나아가 이 지구를 지켜야 한다. 유색인종, 여성, 그리고 성소수자의 존재를 지워내고 있는 현실의 ‘기준’은, 너무도 당연하게 영화에서도 관습으로 작용해왔다.

그렇다고 영화 제작자들과 배우, 그리고 관객들이 차별주의자인가? [히든 피겨스]에서 비비안(커스틴 던스트)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에게 나쁜 감정이 있는 건 아니에요'. 이를 들은 도로시(옥타비아 스펜서)는 더 부드럽게 답한다. '알아요.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겠죠'. 우리 대부분은 특별히 나쁘게 행동하지 못한다. 비비안처럼. 대체로 나쁜 감정이나 못된 생각을 품지 않고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해낼 뿐이다. 문제는 그 감정 없음과 생각 없음이, 상황이 나빠지는데 기여하게 되도록 세상이 기울어져 있다는 것이다. 특별히 나쁘게 행동하는 부류에게 힘을 실어주고 상황을 악화시키는 건, 비비안처럼 평범하고 온화한 다수의 무심함이기도 하다.

[히든 피겨스]는 흑인 여성의 성공담이다. 뿐만 아니라 공부 천재가 나오는 영웅담이다. '봐 줄만한' 남성들과의 연애담이기도 하다. NASA를 배경으로 하는 과학영화이면서 1960년대를 그리는 시대극이다. 하지만 저마다 조금씩 아쉬운 수준으로만 그려졌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다른 천재가 나오는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에서 다뤘던, 학문에 대한 집요함이나 치밀함이 주는 재미가 [히든 피겨스]에서는 덜 다뤄진 듯 하다. 마찬가지로 연애담도 조금 쉽고 편리한 방식으로 스케치만 되어있다. 과학영화와 시대극으로서의 특장점을 가진 영화라고도 볼 수 없을지 모른다. 어쩐 일인지, 다양한 속성들이 '적당히만' 쓰인 느낌이 든다.

하지만 [히든 피겨스]는 절대 적당하기만 한 영화는 아니다. 유머로 가득하며 기승전결이 유려하다. 보는 내내 숨이 턱턱 막히고, 그 날것의 억압들을 뚫고 나서는 인물들의 이야기에 울컥하지 않을 수 없는 영화다. 영웅담/연애담/과학영화/시대극으로서의 만족도가 적은 것은 아마 2시간이라는 런닝 타임이 가질 수 있는 밀도의 한계 때문일 것이고, 그 밀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 앞에서 말햇듯 '흑인 여성의 성공담'이라는 정체성이다.

이 글의 처음에 '그런 시절이 있었다'고 시치미를 뗐지만 사실 2017년은 아직 '그런 시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우린 아직 과거에 살고 있다. 영화는 백인에게 핸디캡을 줄지언정 진짜 핸디캡을 가진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지 않는다. 흑인이 주인공인 영화는 잘 만들어지지 않는다. 2017년이 여태 갖고 있는 맥락 때문에. 동시에 그 억압의 맥락이 너무나 강력하기 때문에 흑인의 서사는 밀도가 높을 확률이 크다. 하물며 그 흑인이 여성이면 더 깊은 차원의 무게감을 가질 수 밖에 없다. 60년대에 흑인 여성은 길거리만 걸어도 억압의 무대 위에 오르는 것이며, 버스를 타거나 도서관에 가는 일상도 모두 세상과의 마찰이기 때문이다. 그런 인물들이 그 고난을 뚫고 최초의 역사를 써나간다는 서사의 영화가 만들어졌는데 어찌 적당할 수가 있겠는가.

캐서린 존슨 같은 현실 속 혁명이 영화를 일깨우기도 하고, 영화의 자유가 현실을 조금씩 물들이기도 한다. 현실과 영화는 서로 밀어주기도 끌어주기도 하면서 진보의 무늬를 그려나간다. 물론 시대 착오적인 영화들도 끈질기게 만들어진다. 영화 산업 역시 좁은 땅은 아니기에. 그러니 우리는 [히든 피겨스] 같은 영화를 더 사랑할 수밖에 없다. 지치지 않고 진보를 즐기며, 영화를 진보시키는 방법이다. 한국의 영화 판에도 제 2 , 제 3의 캐서린 존슨들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법정에서, 대담에서, 인터뷰에서, 그리고 촬영 현장에서. 이 싸움은 영화 자체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이다. 계속 이어나가는 '최초의 싸움'을 통해 우리는 더 행복한 환경에서의 영화를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우린 아직 봐야할 영화들이 너무 많다. 캐서린 존슨 만큼 성공하지 못한 수많은 여성들의 이야기는 아직 듣질 못했다. 성공하지 못해도, 똑똑하지 않아도, 결혼하지 않아도, 결혼했으나 남편의 성을 꼭 따라가진 않아도, 성격이 더러워도 영화의 주인공으로 나서는 사회적 약자의 영화를 보게 될 것이다. 아직까직도 사회에 의해 숨겨진 사람들(Hidden Figures)의 이야기를 더 많이 만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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