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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_reviews

국경시장 - 김성중

cafebye 2016. 4. 4. 00:27

소설을 읽는 진짜 이유에 대해서 김영하 작가는 '헤매기 위해서'라고 했다죠. 표지만큼 몽롱하고 아찔하게 헤맬 수 있는 소설을 만났습니다.



헤맨다는 건, 뻔하고 지루한 세상으로부터 잠시 떨어진다는 의미일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그 진짜 세상에 대한 직유일지도 모르겠어요. 직유든 반어든, 몰입할만한 이야기여야 헤매도 제대로 헤맬 수 있어요. 김성중의 [국경시장]은 독자를 몰입시키기 위해 서늘하고 환상적인 공기로 이야기를 채웁니다. 8편의 단편 중 반 정도는 환상소설이구요.




파리의 골목을 천천히 걸으며 아그네스는 깨끗한 욕실과 작업실, 그녀를 인정하는 사람들의 미소와 같은 것들이 차례로 떠오른다. 아그네스의 절망은 절망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절망이 예전처럼 싱싱하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에바와 아그네스 - 김성중]

소설가들이란 절망이나 외로움에 목을 매는 참 이상한 부류입니다. 이렇게 위험하고 폭력적인 문장이 아름다울 수 있는 건 이게 소설이라서가 아닐까요. 가끔 소설 밖 진짜 세상에 노출 됐을 때 터무니없는 태세로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드는 걸 보면 너무 안타깝지만 놀랍지는 않을 때가 있어요.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안나 카레니나 - 톨스토이]

거의 성경처럼 빈번하게 인용되는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은, 단 한 문장으로도 너무 배가 불러서 벌써 소설 한 편을 다 읽은 느낌이 들게 합니다. 100개의 이야기중 99개의 이야기는 불행한 가정을 다룹니다. 재미가 있어서일까요? 톨스토이가 말한 것 처럼 '저마다의 이유'는 99가지가 훨씬 넘을테니까. 그런데 또 진짜 세상으로 눈을 돌려도 1:99라는 비율은 적용 가능한 듯 하고요. 많은 작법서가 픽션의 필수요소로 '갈등'을 꼽는데, 이는 이론적이면서도 지독하게 수치적인 접근이에요.




오후가 되어서야 풍경이 새삼 사랑스럽게 다가왔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곧 떠날 사람이기 때문이다. 여행지가 가장 좋아지는 순간은 그곳을 떠나기 직전이다. 이별이 가시화된 순간에야 사랑을 확인하는 연인처럼. 


[나무 힘줄 피아노 - 김성중]

사랑 이야기는 두 가지로 나뉘는 것 같아요. 서로의 짝을 찾으며 끝나거나, 새로운 짝을 찾아 떠나며 끝나거나. 동시에 이 둘은, 생략된 '행복하게 살았답니다'의 주위만 돌고 있다는 점에서 결국 하나의 이야기입니다. 만나고 떠나기를 반복하면서 꼬리를 향한 머리가 원을 그립니다. 우리가 접하는 99개의 서로 다른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가운데가 비어있는 도넛 모양입니다.


"나름 재미있을 때도 있어. 다들 그러고 살잖아." 네, 모두 저마다의 이유가 있겠죠.



aladin.kr/p/Z6g8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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