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저의 2015년 마지막 소설 읽기는 이 작품이 되었어요. 추리물은 항상 실패했는데, 미련을 못 버린 이번 시도 역시 또 한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남았습니다. 600 페이지 짜리 재미 없는 소설을 읽은게 억울하니 리뷰라도 써야겠어요.
나른한 이야기
아직 코난 도일이나 애거서 크리스티를 읽지 않아서일까요. 이 쪽 장르에 대한 저의 호감도는 형편없는 수준입니다. 나름 거장이라는 스티븐 킹의, 에드거 상까지 수상했다는 소설이 이렇게 별로라면 저랑은 정말 안맞는 장르인가봅니다. 하지만 아직 궁금합니다. 이 작품이 정말 추리소설 중에 재미있는 축에 속할까?
[미스터 메르세데스]를 읽고 있으면 스릴러나 추리라는 장르가 영상 예술 이전에 가능했다는 게 신기해집니다. 퍼즐의 모양은 단순하고, 그렇다고 과정이 놀라운 것도 아닙니다. 숨겼다가 보여주는 정도의 단순한 리듬만 이어집니다. 가장 뜨거워야 할 결말 직전은 나른하고, 결말은 슬랩스틱이에요. 그렇다고 주인공인 퇴직형사의 능력이나 매력이 뛰어난 것도 아닙니다. 결정적인 단서들을 그의 젊고 똑똑한 친구들이 다 떠먹여주는 동안, 우리의 60대 배불뚝이 백인 남자 주인공이 할 수 있는 건 유효기간이 지난 경찰 신분증을 내미는 것 정도입니다.
나쁜 이야기
그의 훌륭한 단편들을 좋아하고, [유혹하는 글쓰기]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글쓰기 교본입니다. 스티븐 킹은 훌륭한 낡은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시대가 사랑하는 작가 아니겠습니까. 다만 시대가 조금씩 지나는 동안 낡은 겁니다. 하지만 스티븐 킹은 아직 먹어줍니다. 낡은 건 나쁜 게 아닙니다. 하지만 나쁘기 쉬워집니다. 시대의 기준 때문에요.
스릴러에서 제가 가장 싫어하는 게 '예상치 못한 전개를 위해 정신이 불안정한 캐릭터 사용하기'입니다. [심플 플랜]이 그랬고, 봉준호의 몇몇 영화들이 그랬어요. [미스터 메르세데스]도 이 편리한 방법을 사용합니다. 차이가 있다면 [미스터 메르세데스]에서는 그 캐릭터를 여자로 설정했다는 겁니다. 의미 있는 여성 캐릭터를 사용하지 않은 [심플 플랜]의 이야기도 참 낡아 빠졌지만, 여성 캐릭터를 편견에 기댄 기능으로만 사용한 [미스터 메르세데스]는 나쁘기까지 하다고 생각합니다.
주조연급 인물 중에 여성은 세 명인데, 이 중 두 명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어서 극에 긴장을 더하는 역할을 합니다(남성 세 명은 각각 주인공, 범인, 주인공보조입니다). 그런데 정신이 불안정한 두 여자 중 한 명은 주인공을 돕기 위해 갑자기 추리에 필요한 지식들을 또박또박 내놓으니 어이마저 없어집니다. 세상이 조금 좋아져서 이제는 한국어 번역에서 남여 모두 서로에게 존댓말을 쓰고 있고, 여성을 성적 주체(네 맞습니다, 또 그놈의 사랑얘기)로 그리는 노력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더 좋은 걸 원합니다. 2015년이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