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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쓸 때 특정한 형식을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저 하나의 이야기를 할 뿐이지요. 그것도 누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를 풀어쓰는 구닥다리 방식으로요. 그러나 저는 '일어난 일'을 조금은 다른 형식으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어떤 우회로를 거쳐, 낯선 느낌을 줄 수 있도록 말이죠. 저는 독자들이 '일어난 일'에 대해서가 아니라, '일어나는 방식'에 놀라움을 느끼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단편소설이 거둘 수 있는 최대한의 성과입니다.

_작가 인터뷰 중에서


그저 하나의 이야기

많은 글 중에 소설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가, 소설은 '그저 하나의 이야기'를 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힘을 덜어낸 글에서는, 그 속의 주장과 근거를 비판할 일도 없어지고 작가의 개인사와 내 삶을 비교할 필요도 없어집니다. '그저 하나의 이야기'일 뿐인 시간을 잠시 함께 겪어내며 삶을 돌아보는 것이 작은 재미와 큰 울림을 주기도 합니다.


구닥다리 방식

구닥다리인 삶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절한 방식은 구닥다리 방식일지도 모릅니다. 앨리스먼로의 소설들은 놀라울 정도로, 놀랍지 않은 이야기들 뿐입니다. 그토록 뻔하고 익숙한 불행이 일어나는 동안 느끼는 기대와 절망, 경멸과 적응, 후회와 망각을 관찰하고 기록할 뿐입니다. 소설가에게 필요한 능력 중 하나는 동체시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시간을 느리게, 시선을 오래 두고 사는 사람들의 글은 독자들에게 낯섬과 놀라움을 줍니다.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

아무리 지지고 볶아도 결국 우리의 삶은 이렇게 짧고 재미없는 이야기로 기억되겠죠. 그 기억이래봤자 반년도 못갈테고요. 구닥다리를 구닥다리로 표현하는 이야기에서 종종 안락한 좌절감을 느낍니다.


그 애가 알려준 놀이라고는 딱 하나, 종이에 남자 애 이름과 자기 이름을 적고는 서로 같은 철자를 지워버린 다음, 남은 글자 수에 맞춰 손가락으로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을 차례로 말하면서 세어나가는 것이었다. 그 숫자에 딱 걸리는 단어가 그 남자 애와 나 사이의 운명이라면서.


aladin.kr/p/cFT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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